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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변호사 [무등일보 아침시평]갈등(葛藤)과 낭패(狼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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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운영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26회   작성일Date 22-04-2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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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葛藤)은 본래 '칡과 등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한자로 풀어보면 칡나무의 갈(葛)과 등나무의 등(藤)으로 두 덩굴식물의 이름이 합쳐진 단어이다. 갈등(conflict)은 충돌, 반목과 다툼 등의 의미로 통한다. 낭패(狼狽)는 본디 전설 속에 다리가 없는 이리 두 마리를 같이 부르는 이름이다. 낭(狼)은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은 동물이고,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아예 없거나 짧다. 이 둘은 항상 같이 다녀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낭과 패가 서로 떨어져서 난처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를 '낭패(狼狽)'라 한다.

    유한자인 우리 인간은 낭(狼)과 패(狽)처럼 불완전하고, 늘 갈등하는 존재이다.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를 차별하고 무시하면서 갈등을 만들 수 있을까마는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고 그로 인해 낭패를 보면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11월의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증오정치를 부추기는 승자독식의 구조에서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정치의 기능이 실종되고 선을 넘는 행위들이 일상화되었으며, 컨센서스가 없다는 진단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분법적 사고와 진영논리에 빠져 모든 가치가 정파적으로 소비되는 측면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슬픈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소위 '내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상대편'에 대해서는 무조건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다.

    국민주권주의를 의미하는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자기 통치과정은 대의제와 다원주의에 입각한 다수결의 원리에 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수결의 정당성은 단순히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수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소수의견 등 다양한 의견이 표현되어 찬반이 교차하는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결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절대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다수와 소수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수용하는 과정이고, 정치과정에서 야당이나 소수자의 의견을 특별히 배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는 '나'와 '상대방'이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호(好)와 불호(不好), 선악(善惡)으로 구분하여 차별하고, 차별을 빌미로 상대를 공격하면 극단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열린 사회로 가는 첫걸음은 상대방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본인만 옳다고 주장하는 확증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시시비비는 가리더라도 상대에 대해서 경청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성문화된 헌법이나 광범위한 법률을 보유한 적이 없었다. 그 대신 성문화되지 않은 규율과 전통, 상호기대가 로마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칭하여 '선조들의 관습'을 뜻하는 '모스 마이오름(mos maiorum)'이라고 불렀다. 정적들이 부와 권력을 다툴 때조차도 피호관계의 힘과 민회의 자주권, 원로원의 지혜를 존중하는 태도를 공유했기 때문에 선을 넘는 행위가 없었고 용인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말 공화정이 무너지기 시작할 당시에는 로마의 법조문이 아니라, 공동 합의된 로마 사회의 컨센서스로 기능한 '모스 마이오름'에 대한 존중이 무너진 것이었다. 기원전 2세기 말 로마 공화정의 몰락에서 2021년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역사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돌아보면 갈등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와 다른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는 그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 우리 사회 안에서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싸우되 배척하지 않고, 다투되 서로 상생하고 공존하는 지혜가 칡넝쿨과 등나무에 있다. 더불어 살면서 갈등(葛藤)을 해결하는 것이 적어도 낭패(狼狽)를 당하지 않는 지혜이다.김정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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